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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권리 삭제 문서”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3-03-14   조회수 :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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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개인예산제를 도입하고 탈시설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아래 6차 종합계획)을 확정했다. 이에 대해 전장연은 6차 종합계획을 강하게 규탄하며 “정부가 장애인 권리를 삭제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정부는 9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6차 종합계획(2023~2027년)과 ‘장애인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확정했다. 종합계획은 장애인복지법 10조에 따라 1998년부터 5년마다 수립하는 범정부 계획이다. (관련 자료: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보도자료 ‘제24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전장연은 10일 오전 10시, 서울시 종로구 유리빌딩 5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차 종합계획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유엔협약)과 장애인 권리를 삭제한 문서, 탈시설 가이드라인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유엔위원회) 권고를 거부한 문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이 9일 6차 종합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수어통역사(오른쪽)가 조 장관의 말을 수어로 통역하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거쳐 2026년부터 전국서 시행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자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정해진 복지서비스를 받는 대신 주어진 액수 안에서 개인이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스스로 선택해 받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장애인이 욕구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서비스 간 칸막이를 없애겠다”는 이유를 들며 개인예산제 도입을 추진해 왔다.

정부는 활동지원제도를 중심으로 개인예산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신체활동, 가사활동 등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복지서비스로, 서비스지원종합조사를 통해 월 이용가능한 시간을 바우처로 받는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는 월평균 127시간씩 주어지며, 한 시간 당 주중 낮 시간 서비스 단가는 15,570원이다. 즉, 한 명의 장애인에게 월평균 197만 7,390원의 ‘활동지원급여’가 지급되고 있다. 이는 바우처로 지급되기에 활동지원서비스 외엔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개인예산제를 도입해 활동지원급여의 일정 부분을 다른 서비스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며, 이것이 바로 ‘서비스 간 칸막이를 없애겠다’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개인예산제 도입 추진단’을 구성하고 시범사업을 위한 기초모델 개발연구를 실시해 모의적용 연구방안을 마련했다. 올해부터 시행하는 모의적용 연구는 4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총 120명(지자체당 30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사업모델을 적용할 예정이다.

첫 번째는 ‘급여유연화 모델’이다. 활동지원급여 중 10% 범위 내에서 공공·민간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 구매처는 정해져 있다. 공공서비스의 경우 장애아동 발달재활,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장애인 단기거주시설, 의료비, 보조기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민간서비스는 장애인 자가용 개조, 주택개조, 주거환경 개선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활동지원급여가 월 200만 원일 경우, 이 중 20만 원은 활동지원 외 정해진 공공·민간서비스 구매처에서 쓸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는 ‘필요서비스 제공인력 활용 모델’이다. 활동지원급여 중 20% 범위 내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을 장애인 이용자가 선택하도록 했다. 인력에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언어치료사, 물리치료사, 보행지도사, 촉수화통역사 등이 있다.

올해 4개 지자체에서 모의적용 연구가 끝나면 2024년 8개 지자체, 2025년 17개 지자체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개인예산제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시스템을 구축한 뒤 2026년부터는 전국에서 본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10일 열린 전장연 입장 정책 브리핑 현장.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개인예산제를 비판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전장연 “개인예산제 도입하면 활동지원시간 줄어들 것”

전장연은 “개인예산제는 권리삭감예산제”라고 비판했다. 개인예산제는 얼핏 보면 유용해 보이지만 사실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줄어드는 제도라는 것이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의 평균 활동지원시간은 월 127시간, 하루 4.2시간꼴이다.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샤워를 하는 등 일상생활 지원을 하루 4.2시간밖에 받을 수 없다. 중증장애인들은 장애인을 활동지원서비스에서 대거 탈락시키거나 활동지원시간이 줄어들게 만드는 서비스지원종합조사의 문제점을 거듭 지적하면서,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을 늘릴 것을  요구해 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기자회견 후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활동지원시간이 그대로인데 거기서 10~20%를 떼서 필요한 데 쓰라고 하다니, 이건 사기다. 안 그래도 부족한 급여의 일부분을 떼서 필요한 데 쓰라고 하는 건, 최중증장애인에게는 생존권을 내다 버리라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발달장애인이나 최중증장애인 등 자기표현이 어려운 사람은 가족에 의해 활동지원서비스 급여가 착취될 우려도 있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또한 “구매처에 해당하는 공공·민간서비스는 원래 정부가 제도로서 보장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예산을 들여서 제도로 보장할 생각은 하지 않고 늘 던져주던 떡고물(적은 활동지원서비스 급여)에서 나눠서 알아서 쓰라고 하니, 개인예산제가 아니라 권리삭감예산제”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6차 종합계획을 발표한 문서에서 한국의 장애인복지예산이 낮다는 것을 시인했다.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발간한 문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인정책 재정지출 비율은 0.72%(추정치)로,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14%의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박 대표는 이를 언급하며 “개인예산제가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에 맞추는 ‘장애인권리예산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 도입을 요구하며 2021년 12월 3일부터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였지만 정부는 장애인권리예산안을 대부분 수용하지 않았다.


전장연은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열리기 전인 9일 8시, 삼각지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차 종합계획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활동가들이 스티커를 벽에 붙이려 하자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거칠게 막아서며 스티커를 빼앗고 구겼다. 바닥에 구겨진 스티커가 떨어져 있다. 벽에는 “보건복지부는 장애인권리협약(CRPD)에 명시된 탈시설 용어를 부정하지 말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정부 “시설도 하나의 선택지”… 전장연 “유엔협약 위반”

6차 종합계획에는 탈시설로드맵 정책을 후퇴시키는 계획도 담겼다. 정부는 “장애인의 자립 및 주거결정권”을 강화하겠다면서 탈시설로드맵 시범사업의 성과를 분석하고 장애계 의견을 수렴해 로드맵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보완 방향은 ‘주거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시설을 주거 선택지의 하나로 인정하고 시설에 예산을 더욱 쏟아붓는 것이다. 장애인거주시설을 자립생활을 촉진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중증장애인 등에 대한 전문적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단계적 전환하는 두 가지 안이 제시됐다. 이를 시행하기 위해 기존 대규모 거주시설을 소규모 시설과 의료집중형 전문기관 등으로 전환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고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시설 소규모화의 경우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에 1인 1실 위주로 운영하는 독립형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의 설치 및 운영기준을 마련하고 시범운영을 추진할 예정이다. 시설 의료전문화를 위해서는 중증와상장애인, 의료연계나 집중 행동교정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의료집중형 전문서비스 제공기관을 도입한다.

그러나 유엔협약과 탈시설가이드라인에선 소규모 시설로의 전환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탈시설가이드라인은 “대규모 시설에서 소규모 시설로 전환하는 것은 유엔협약 제19조에 반한다”고 지적하며 “소규모 그룹홈을 포함한 단체 주거, 보호작업장, ‘임시보호’를 제공하는 시설, 전환홈(체험홈), 주간보호센터(Day-care centres) 혹은 지역사회 치료 명령과 같은 강제 조치는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가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박 대표 또한 “정부는 유엔협약을 비준해놓고 유엔협약마저 위반했다”면서 “정부는 시설이 하나의 선택지라는 걸 천명했다. 문재인 정부 때 세워진 탈시설로드맵은 무려 20년간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정책인데 그것조차 내팽개쳤다”고 규탄했다.


전장연은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열리기 전인 9일 8시, 삼각지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차 종합계획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이라고 적힌 빨간 부채를 들고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 있는 정책 반복한 6차 종합계획

6차 종합계획에는 개인예산제와 탈시설 후퇴 외에 건강권, 교육권, 노동권, 이동권 등의 계획이 담겼다. 전장연은 “이미 있는 정책을 반복해 나열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건강권의 경우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 기반 장애인 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업은 현재도 있는 사업이다.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 16조에 근거해,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2018년 5월부터 시행됐다.

사업은 장애계로부터 ‘유령사업’, ‘실패한 사업’이라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차 시범사업에 참여한 중증장애인은 1146명뿐이다. 전체 중증장애인 98만여 명의 고작 0.1%만이 이 사업을 이용했다. (관련 기사: 이용자 0.1%, 유명무실한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개선방안은?)

문제는 다양하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으로 등록된 곳 중 많은 병원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 이용자가 접근하지 못했다. 복지부가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사업 참여를 독려하지만 등록 의료기관의 70%가 진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했다. 43%는 해당 의료기관이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참여 기관이라는 걸 모르고 있기도 했다. 박 대표는 “있는 사업이 왜 실패했는지 이해부터 해야 한다. 현행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기관의 책임이 따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장애인 교육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수를 현행 53개에서 2027년까지 100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평생학습도시 수가 늘어나더라도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이 의미 있게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2019년 ‘장애인평생교육 중장기 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비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33.5%인데 반해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프로그램에 따라 0.2~1.6%(2017년 기준)로 나타났다. (관련 기사: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촉구하며 국회 앞 긴급 농성 돌입)

중요한 건 장애인에게 맞춘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다. 장애유형과 정도 등을 고려한 프로그램, 한글을 알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문해교육 등이 지원돼야 한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는 이를 위해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투쟁을 진행 중이다.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들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는 “발의된 법안부터 제정하고 학습도시 수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노동권도 기존의 장애인일자리 제도와 공공기관의 장애인기업 제품 우선 구매 추진 등을 확대하고 강화하겠다는 계획뿐이다. 박 대표는 “중증장애인을 사각지대로 내몰고 노동할 기회도 주지 않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1만 개를 보장해야 한다. 유엔위원회가 대한민국에 권고한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일자리보장제’의 실현, 시민사회계도 주목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이동권 계획도 이미 시행된 정책이 나열됐다.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와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이동지원센터 운영비 국비 지원은 이미 관련 법과 시행령 개정으로 확정된 사안이다. 문제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는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없다는 것과 특별교통수단 이동지원센터의 국비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기재부, 장애인 이동권 또 반대… 교통약자법 개정안 논의 연기)

박 대표는 “6차 종합계획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조삼모사 계획”이라며 “개인예산제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권리를 삭감하고, 유엔협약과 탈시설가이드라인을 전면 거부하는 행태가 바로 티포 프로그램(T4 program, 독일 나치의 장애인 학살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불평등한 관계를 변화시키고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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