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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인 열사 17주기, 여전히 싸워야 한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2-11-29   조회수 :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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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인 열사 17주기, 여전히 싸워야 한다


기자명 강혜민 기자   입력 2012.11.29 17: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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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인천 앞바다에서 의문사한 이덕인 열사 추모제 열려

“어머니, 꿈에서 왜 그리 서러웁게 목놓아 우셨나요…”


 

▲장애빈민운동가 이덕인 열사 17주기 추모제가 28일 늦은 6시 30분 광화문광장 해치마당에서 이덕인열사 17주기추모제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사진은 이덕인 열사 어머니 김정자 씨가 발언하는 모습.

“벌써 17년이라는 세월이 넘었습니다. 지금도 자식 사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덕인이 생각하면 너무 쓰리고 아픕니다. 이 나라 공권력은 부모 앞에서 싸늘하게 식은 자식 시체를 가져가 고깃덩어리처럼 세 갈래, 네 갈래 갈가리 다 찢어 부검했습니다.


며칠 전 덕인이에게 갔습니다. ‘엄마, 나 추워 죽겄어’ 말할 수 없는 자식이기에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의문사라죠.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세월 가면 마음 독해지고 누그러질 줄 알았는데 갈수록 더 쓰리고 아픕니다. 언제까지 정권들은 부모 가슴에 못 박을 건지…” (이덕인 열사 어머니 김정자 씨)


장애빈민운동가 이덕인 열사 17주기 추모제가 28일 늦은 6시 30분 광화문광장 해치마당에서 이덕인열사17주기추모제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1967년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난 이덕인 열사는 어린 시절 탈골로 장애를 입었다. 1995년 6월 인천 아암도에서 노점을 시작한 열사는 장애인자립추진위원회, 인천노점상연합회 아암도 지부 총무 등을 맡아 활동하며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반대 투쟁, 범민족대회 등에도 참가했다.


그해 11월 24일 이른 7시, 인천시와 연수구는 아암도에 친수공간을 조성한다며 용역 1,500여 명을 투입해 그곳에서 생계를 꾸려가던 노점상들을 철거했다. 열사는 무자비한 노점 단속에 항의하며 함께 싸우던 장애인, 노점상인들과 함께 망루 위에 올랐다.


경찰은 초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소방차를 동원해 망루에 물대포를 쏘고 돌멩이를 던지며 농성중지를 요구했다. 또한 경찰은 음식물 반입을 막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했다.


25일 밤 열사는 고립된 망루의 상황을 외부에 알리고자 경찰 포위망을 뚫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3일 뒤인 28일 오전 10시경, 열사는 농성장 근처 아암도 앞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발견 당시 열사는 얼굴 부위와 어깨 등에 피멍 든 상처가 있고 윗도리와 신발은 벗겨져 있었으며 두 손은 밧줄로 포박된 상태였다. 열사 나이 만 28세였다.


다음날인 29일, 경찰은 병원 영안실 콘크리트벽을 부수고 들어와 시신을 탈취해 갔다. 부검 후, 경찰은 열사가 연안부두로 수영하다가 지쳐 익사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가족들과 장애인, 노점상 등 지역단체들은 의문을 제기하며 다음 해 5월까지 6개월여 동안 장례투쟁을 벌였다.


이덕인 열사 어머니 김정자 씨는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진 모르겠으나 유가족협의회 어머니들의 한을 풀어주고 의문사 진상규명을 반드시 해달라”라며 “명예 회복해서 자식들 따뜻한 곳에 살게 해달라”라고 전했다.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는 얼마 전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화재로 죽은 고 김주영 활동가를 비롯해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최저생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죽어간 이들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했다. 얼마 전 전남 고흥에서는 전기료를 내지 못해 촛불을 켜고 자던 할머니가 손자와 함께 죽었으며, 경기도 포천에서는 70대 노인이 12세의 뇌병변장애인 손자와 함께 목을 매 숨졌다.


박김 대표는 “17년 전, 열사가 이 땅에서 장애인 자립생활과 노점상들의 생계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떠났으나 여전히 투쟁하고 싸워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라며 “장애인, 빈민들은 기본적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고, 가족관계가 끊어졌음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라고 꼬집었다.


박김 대표는 “오늘 열사가 살아 있었다면 열사 또한 장애인과 빈민의 권리 보장을 위해 투쟁했을 것”이라면서 “열사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말로만 이어받는 게 아니라, 장애인과 빈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동지들과 함께 열사의 뜻을 따라 열심히 투쟁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김명운 의장은 “추모연대에는 500여 명에 가까운 열사들을 모시고 있는데 이중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중이었다”라며 “이들은 서로의 아프고 힘들고 뜨겁고 춥고 외로운 감정들을,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김 의장은 “50대 중반을 넘어가는데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투쟁하지 않고 얻어졌던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투쟁해야 한다.”라면서 “투쟁이 더 강하게 확대되기 위해서는 가까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통과도 함께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조직국장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조직국장은 거리노점을 하며 여성이자 장애인, 빈민으로서 살다간 최옥란 열사와 노점단속에 항의해 분신한 최정환 열사, 고 김주영 활동가, 파주 남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자살한 사람들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며 “죽음을 기억하며 싸워나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김 조직국장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100일과 이덕인 열사 추모제를 준비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싸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라며 “열사들을 기억하며 투쟁한다는 것은 자신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이며, 이는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투쟁과 눈물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가야 할 것인가를 열사들은 알려준다.”라고 전했다.


김 조직국장은 “죽음을 기억하고 투쟁하면서 마음 아파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투쟁했던 기억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삶들을 생각하며 더 뜨겁고 결의 높게 투쟁할 수 있었으면 한다”라며 “더는 어떠한 죽음도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이 당당히 인정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워나가자”라고 결의를 다졌다.


이어 17년 전, 공권력에 의해 열사의 시신이 탈취당했을 때 그 자리를 지켰던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김현우 부위원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김영진 위원장

김 부위원장은 “당시 이덕인 열사 영안실에서 시신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지만 공권력에 의해 시신을 탈취당했다”라며 “그 후 그들은 열사의 시신을 탈취당해 강제 부검하고 갈기갈기 찢긴 시신을 보내왔다. 그 시신을 보고 들었던 당시의 울분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라고 토로했다.

김 부위원장은 “대한민국에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탄압하는 죽음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라며 “그것이 최근 용산 철거민학살이고 쌍용차 23명의 죽음”이라고 비판했다.


김 부위원장은 “나 역시 5급 장애인이고 한 달 29만 원 수급을 받는 수급자이며 초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했다”라면서 “내가 노점상을 하는 것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며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민중들을 위한 투쟁을 하기 위함이다. 이 살인의 역사를 끊어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노동가수 박준 씨의 추모공연이 이어졌다. 박 씨는 ‘편지5', ‘장애해방가’를 부르며 열사를 추모했다. 박 씨는 ‘편지5’를 부르기 전 “이덕인 열사 어머니께 자식의 마음으로 편지 한 통을 전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 어제 꿈에서 잠시 뵈올 때


왜 그리 서러웁게 목놓아 우셨나요

이 못난 자식 때문에 온갖 세상고생 다 하시고

밤마다 소리 죽여 제 이름 부르시는 어머니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오, 어머니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언젠가 뵈올 그날까지 부디 몸 건강하세요


                      - 편지5(글·가락 윤민석)


노래가 끝나자 이덕인 열사 어머니 김정자 씨는 “내 아들 덕인이,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 내가 눈감는 날까지 사랑한다.”라며 오열했다.


 

▲ 노동가수 박준 씨가 “이덕인 열사 어머니께 자식의 마음으로 편지 한 통을 전하고 싶다”라며 '편지5'를 부르고 있다. 맨 오른쪽 앞줄이 이덕인 열사 어머니 김정자 씨.

추모제 마지막 발언으로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박경석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박 회장은 17년 전 자신이 피하고자 했던 열사 죽음을 기억해내며 이번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자고 결의를 다졌다.


“열사가 죽고 난 후 200일 동안 장애인자립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의 장애인자립 투쟁은 오늘날 자립생활운동과 달리 장애인들이 노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좌판이라도 깔고 살아가고자 했던 것이 크게 잘못된 것입니까? 시체 훼손까지 되면서, 그렇게 나쁜 짓 한 겁니까?


열사의 투쟁이 있었기에 지금의 투쟁이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 공권력 앞에 무기력해질 때, 여전히 그 죽음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열사를 생각했으면 합니다. 얼마 전에 죽은 주영이를 생각하고, (화재 속에서 죽어간) 할머니와 손자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승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덕인 열사가 아무도 모르게 바다에서 발견되었던 외로움과 고통을 기억합시다.”


한 시간 반가량 이어진 이날 추모제는 참가자들의 분향과 헌화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덕인 열사 어머니 김정자 씨가 헌화하며 이덕인 열사 영정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 징애빈민운동가 이덕인 열사 17주기 추모제

 


 

▲추모제에 앞서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이날 추모제에 참여한 이덕인 열사 유가족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들.

 

▲추모제 사회를 맡은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

 

▲이덕인 열사 17주기 추모제 참가자들.

 

▲참가자들이 장호경 감독의 이덕인 열사 추모 영상을 보고 있다.

 

▲노동가수 박준 씨가 “이덕인 열사 어머니께 자식의 마음으로 편지 한 통을 전하고 싶다”라며 '편지5'를 부르고 있다.

 

▲이덕인 열사 생각에 눈물을 훔치는 이덕인 열사 어머니 김정자 씨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박경석 회장이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추모제 마지막 순서로 이덕인 열사 영정에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출처 :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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