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언론보도
서울역 근처 병원 300개 중 홈리스 갈 수 있는 곳 0개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3-11   조회수 : 1677
파일첨부 :

용산역 근처에서 생활 중인 홈리스 ㄱ 씨는 발가락에 있던 통증을 참다가 걷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용산역 근처에 정형외과가 있는 병원은 30곳 정도 있지만 ㄱ 씨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ㄱ 씨는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국립중앙의료원, 동부시립병원 등에만 갈 수 있다.

ㄱ 씨는 차비가 없어서 병원까지 걸어가야 한다. 용산역에서 국립중앙의료원까지는 7km로 두 시간을 걸어야 한다. 동부시립병원까지는 10km고 세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그는 발가락 통증이 심해 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병원 진료를 포기해야 했다.

이처럼 ‘홈리스는 지정해 준 병원에만 가라’는 취지의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의 폐해는 심각하다. 많은 홈리스가 이 제도 때문에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못 받고 심지어는 치료를 포기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기준으로 서울역 근처 병원은 약 300여 개가 검색된다. 이중 서울역 광장에서 생활하는 홈리스가 갈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홈리스행동과 홈리스 당사자들은 10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보건복지부가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복지부는 이 제도를 폐지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권고를 무시하고, 코로나19 시기에 1년만 한시적으로 노숙인 진료시설을 확대하는 고시제정안을 행정예고한 상태다.


로즈마리 회장이 ‘노숙인 의료급여 확대 방안 지금 당장 마련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가난한 사람 병 키우는 제도

복지부는 의료급여법에 따라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10개 유형으로 분류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의료급여 수급자, 이재민, 북한이탈주민, ‘노숙인 등’ 등이 있다.

10개 유형 중 ‘진료시설 지정제도’가 있는 사람은 ‘노숙인 등’으로 지정된 홈리스가 유일하다. 다른 병원에 가려면 갈 수야 있겠으나, 그러면 의료급여 적용을 못 받고 비싼 병원비를 전부 내야 한다. 의료급여에 탈락해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의료지원을 받더라도 홈리스는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병원에만 가야 한다.

그런데 2020년을 기준으로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278곳 중 224곳, 약 80.5%가 보건소다. 보건소에서는 수술이나 입원이 가능하지 않다. 즉, 홈리스가 질병을 적절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은 전체 시설의 20%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이마저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서 홈리스가 갈 수 있는 병원은 사실상 사라졌다. 동부시립병원에 입원해 있던 ㄴ 씨는 2020년 12월, 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자마자 강제로 퇴원당했다. 그 또한 차비가 없어 성치 않은 몸으로 동부시립병원에서 그가 생활하는 용산역까지 10km를  걸어 와야 했다.

로즈마리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회장은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가 사실상 병과 상처를 키우고 있다. 먼 거리까지 교통비가 지원되는 것도 아니다. 식사도 못하고 피 토하고 절절 끓는(너무 아픈) 몸으로 그 먼 데까지 걸어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홈리스 언니는 내게 ‘죽지 못해 산다’고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아픈데 먼 거리에 있는 병원만 가라고 하는 것은 차별이고 불평등이다. 이런 제도는 박살내야 한다. 홈리스 누구나 가까운 병원에 갈 수 있을 때까지 (복지부를 향해) 계속 징징대고 울 것”이라고 규탄했다.


안형진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복지부는 재정건전성과 의료쇼핑, 중복투약 등이 우려되기 때문에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운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너무나 행정 편의주의적 관점이다. 홈리스 당사자 입장과 인권의 원칙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이 제도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급여 문턱도 홈리스에게 너무 높다. 홈리스가 의료급여 수급자가 되려면 세 가지 관문을 거쳐야 한다. 첫째는 노숙 기간이 3개월 넘었다는 것을 행정적으로 확인시켜야 한다. 둘째는 건강보험 미가입자 혹은 6개월 이상 체납자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이나 자활시설에 3개월 이상 거주한 것이 확인돼야 한다. 이 관문을 다 거쳐야만 의료급여 수급자가 될 수 있다.

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활시설 입소자는 1107명, 거리 및 이용시설 노숙인은 1595명이다. 그런데 2020년 11월을 기준으로 의료급여를 받고 있는 홈리스 수는 333명뿐이다. 안형진 활동가는 “정책 대상자 규모에 비해 실제 수급자 수가 지나치게 적다. 복지부는 홈리스를 인권 진공상태로 밀어넣고 건강권 보장의 책임을 방기한다”고 비판했다.


결의대회 현장. 박준 문화노동자가 공연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 복지부 “진료시설 한시적 확대” 고시 제정 발표에 홈리스행동 “생색내기 용”

인권위는 지난 1월, 권덕철 복지부 장관에게 두 가지를 권고했다. 하나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 다른 하나는 홈리스 의료급여 적용 확대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복지부가 홈리스의 건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가 코로나19 재난상황에서 제도적 순기능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한된 의료기관만을 이용해야 하는 차별적 조건으로 인해 노숙인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회보장제도 운영 취지에 부합하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 의료서비스 접근권을 침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 증진에 노력할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까다로운 의료급여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사회보장급여 신청권을 차단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원이 필요한 국민이 급여대상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지원대상자를 적극 발굴해야 하는 국가의 노력 의무에 부합하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인권위 권고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선 지난달 28일에 ‘노숙인진료시설 지정 등에 관한 고시’ 제정을 행정예고했다.

고시제정안에 따르면 복지부는 노숙인 진료시설을 확대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조건을 붙였다. ‘감염병과 관련해 주의 단계 이상의 위기경보가 발령된 때’에만 1·2차 의료급여기관에 한정해 확대한다. 요양병원은 제외된다. 이 같은 조치는 고시발령 후 1년만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복지부는 “이번 고시 제정은 현재 노숙인 진료시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건소, 공공의료원 등이 코로나19 감염병 선별 진료 및 감염병 전담병원 업무에 집중함에 따라 노숙인의 의료급여 이용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됐다”고 밝혔다.

오경희 복지부 자립지원과 행정사무관은 10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인권위가 제도 개선 전까지는 노숙인 진료시설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이번 고시 제정은 이에 따른 것”이라며 “고시 운영 기간에 연구용역 등을 추진해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를 목적에 두고 연구용역 등을 하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제도 폐지는 확답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자물쇠 씨가 ‘홈리스 차별하는 진료시설 지정제도 전면 폐지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제도를 폐지하지 않고 유지하는데, 코로나19 기간에만 선심 쓰듯 완화해 주겠다는 거다. 인권위 권고 나오니까 복지부는 가장 비용이 안 드는 방식으로 성의 없게 일처리했다”고 성토했다.

홈리스행동은 “마땅히 누려야 할 평등권과 의료접근권을 감염병 재난시기에 국한했다. 요양병원은 진료시설에서 제외하는 등 다른 의료급여 수급권자와 또 차등을 뒀다. 기존 제도의 차별을 그대로 답습한 이번 고시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거리홈리스 당사자인 대관 씨와 홈리스야학 학생인 자물쇠 씨는 결의문을 통해 “복지부는 홈리스 권리를 보장하긴커녕 생색내기용 고시나 냈다. 인권위 권고에도 꿈쩍 하지 않는다”며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하지 않고 홈리스의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건 불가능하다. 차별의 장벽을 허물지 않고선 홈리스 평등권과 건강권을 보장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30) 

이전글 장애계 “지속가능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서울시의회 앞 천막농성 시작
다음글 8년만 장애인 시외이동권 판결 ‘반쪽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