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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은 듣지 않았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장애인 기본권’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3-02-06   조회수 :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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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전장연-오세훈 공개 단독 면담 가져
기본권 박탈당한 장애인에게 서울시장 “시위 그만” 반복만
서울시, 유엔 협약 왜곡하고 탈시설 ‘비용 문제’로 취급
전장연, 기재부·서울시에 3월 23일까지 권리예산 답변 요구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왼쪽)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오후 서울시청 본관 8층에서 장애인 이동권, 탈시설 권리 등을 주제로 공개 면담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왼쪽)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오후 서울시청 본관 8층에서 장애인 이동권, 탈시설 권리 등을 주제로 공개 면담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대표단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장애인 이동권, 탈시설 권리 등을 주제로 공개 면담을 가졌다. 그동안 서울시가 전장연에 강경 대응 의지를 보여온 만큼, 이번 면담에서도 오 시장은 전장연의 요구안에 선을 그으며 지하철 시위 중단을 거듭 요구했다. 면담에 나선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22년간 장애인운동이 벌여온 권리 투쟁을 설명하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을 물었다.

박 대표와 오 시장은 이날 오후 3시 30분 서울시청 본관 8층에서 장애인 이동권 및 탈시설 권리, 장애인권리예산, 출근길 지하철 시위 등을 두고 면담을 진행했다. 전장연은 지난달 4일 오 시장과의 단독 만남을 전제로 지하철 탑승 시위를 중단했으나, 오 시장은 탈시설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장애인단체 비공개 합동 면담을 고수했다. 그사이 서울시는 법원의 1·2차 조정안을 모두 거부했고,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에 6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면담은 양측 간 고조되는 긴장감 속에서 어렵게 성사됐다. 면담 내용은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KBS, JTBC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면담은 당초 예정된 30분보다 길어져 50분간 이어졌다.

박 대표와 오 시장, 그리고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동석한 이날 면담은 지난 22년간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해 삶의 권리를 박탈당한 장애인과, 서울시정의 모든 사안에 최종 권한과 책임이 있는 서울시장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오 시장은 서울시 탈시설 조례와 정부 탈시설 로드맵이라는 전체적인 흐름을 무시하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제시했다. 특히 장애인 이동권에 담긴 요구와 맥락을 빠뜨린 채 시위 방식만을 문제 삼으며 시위 중단을 요구한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비롯해 장애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정부 탈시설 로드맵과 유엔 협약 거스르는 서울시

이날 면담은 “(전장연 시위로) 시민들이 입는 피해가 이제는 인내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오 시장의 말로 시작됐다. 오 시장은 “냉각기를 갖자는 서울시의 제안에 전장연이 흔쾌히 동의해주시고, 극단적인 형태의 시위를 자제해주셔서 시민들이 비교적 평온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지하철을 지연시키는 방식의 시위를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사망한 이후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외치며 22년간 지하철을 탔다”며 “수많은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죽은 것, 역대 서울시장이 지하철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오 시장은 이날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는 서울시의 약속은 20년 넘게 선언에 그쳤다. 2002년 8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서울지하철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2015년 12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은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 및 세부 실천 계획’을 발표해 2022년까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겠다고 한 번 더 약속했지만, 2021년 초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 기한을 2024년으로 다시 미뤘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왼쪽부터), 오세훈 서울시장,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2일 오후 서울시청 본관 8층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비마이너 유튜브 캡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왼쪽부터), 오세훈 서울시장,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2일 오후 서울시청 본관 8층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비마이너 유튜브 캡처

이어 박 대표는 오 시장에게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가 발표한 ‘대한민국 제2·3차 병합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와 ‘긴급상황을 포함한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전달했다.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유엔 최종견해와 가이드라인의 골자다. 오 시장은 면담을 하루 앞둔 1일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 3곳을 방문해 시설 거주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설을 포함해) 선택지가 많으면 좋다”, “(시설에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도 있겠다”고 말하는 등 탈시설 정책 흐름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였다.

박 대표는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보면 ‘모든 형태의 시설을 폐지하고 신규시설 입소를 금지하며 시설에 대한 투자를 막아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며 “시설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시설 입소를 더 늘려야 한다는 말은 모두 가이드라인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단체끼리 의견을 대립하는 소모적인 방식 대신 오 시장이 직접 위원회를 불러 이 문제를 기본적인 권리의 차원에서 바라봐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협약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탈시설 정책 추진에 미진한 태도를 보였다. 김 실장은 “유엔 일반논평 5호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시설에 거주하든 지역사회에 거주하든 자립생활 여건이 보장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일반논평 5호에서 ‘자립적 생활은 모든 거주시설 유형의 외부 생활환경’을 가리킨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거주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물리적 이동만으로 탈시설·자립생활이 완결되지 않는다면서, 지역사회에서 일상의 통제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시설화된 환경’에도 우려를 표한다.

일반논평 5호는 완전한 지역사회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개별화된 지원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기본적인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활동지원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김 실장은 “(전장연은) 무조건 탈시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장애인 한 명이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거주한다고 하면 1년에 활동지원 예산만 1억 5,000만 원이 든다”며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요구에 난색을 보였다. 이는 서울시가 탈시설을 ‘권리’가 아닌 ‘비용’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박 대표는 “당장 모든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로드맵의 20년 계획을 지키라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2009년 처음으로 ‘탈시설’ 용어를 개념화했고 중앙정부보다 먼저 조례를 만들어 탈시설 정책을 시작했다”며 “그때부터 장애인 이동권, 주택, 일자리가 모두 보장되어야 한다고 서울시장이 직접 말씀하신 만큼 이 문제를 이념적 논쟁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했다.

- 탈시설 예산 둘러싼 오세훈식 ‘제멋대로 셈법’

탈시설 예산을 두고도 서울시는 잘못된 셈법으로 나온 수치를 가져와 이를 비용의 문제로 몰아갔다. 김 실장은 “(전장연이) 장애인 이동권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장애인권리예산을 보면 탈시설 예산이 70~8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활동지원 예산을 모두 탈시설 예산으로 환산한 수치로, 실제 활동지원을 이용하는 장애인 가운데 탈시설 장애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박 대표가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저상버스 타고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이용하면 그것도 다 탈시설 예산이냐”고 받아치며 서울시의 셈법을 비판한 이유다.

김 실장과 박 대표의 대화를 지켜보던 오 시장은 “(박 대표가 말하는) 탈시설이 다 옳다고 치더라도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왜 지하철을 멈춰 세우느냐”며 “정시성을 생명으로 하는 대중교통의 특성상 시민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나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앞서 2017년 ‘서울지하철 안전보강대책’을 발표해 지하철 운영 패러다임을 ‘정시성’에서 ‘안전’으로 전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2016년 2호선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등 지하철에서 안전사고가 반복되자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이다. ‘조금 늦더라도 인권을 생각하자’는 차원의 조처였지만, 오 시장은 이날 “(전장연이) 정시성을 생명으로 하는 지하철 운행을 84번 지연시켰다”며 6년 사이 서울시의 입장을 번복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3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에게 권리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오 시장은 전장연이 “사회적 강자”라고도 했다. 오 시장은 “지하철을 지연시켜 철도안전법을 위반하는 중범죄를 저질러도 전장연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에 이렇게 법을 대놓고 무시해도 되는 사회적 강자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1년 동안 많이 기다려드렸다. 앞으로 탈시설을 추구하는 전장연과 시설 생활에 가치를 두는 분들을 동등하게 챙겨나갈 테니 지하철 시위만큼은 자제해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이에 박 대표는 “지난 22년간 수억 원의 벌금을 내고 구속까지 당했다. 지금도 27명이 형사처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동안 사법처리에 무슨 관용이 있었느냐”면서 “헌법은 국가 권력에 의해 중대한 침해가 발생했을 때 국민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저항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죽어도 서울시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황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오 시장은 박 대표의 질문에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박 대표는 “장애인 이동권은 정권의 문제도, 정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 22년간 장애인에게 지연된 시간의 무게를 심각하게 바라봐달라”면서 “우리가 사회적 강자라고 말하기 전에 진짜 사회적 강자인 기획재정부에 이 문제(장애인권리예산)의 책임을 물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편 전장연은 지난해 내내 지하철행동을 벌이며 올해 장애인권리예산 증액을 요구했지만, 예산 편성권을 쥔 기재부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좌절되었다.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 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 1.1% 증액된 것이 전부다.

- 전장연, 13일까지 지하철 탑승 시위 중단

이날 박 대표는 추경호 기재부 장관에게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전해달라고 오 시장에게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면서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벌어진 탈시설 운동을 다룬 책 《집으로 가는, 길》을 오 시장에게 선물하며 “시설의 목소리만 듣지 마시고 시설에서 나온 중증장애인의 목소리도 들어달라”고 했다.

전장연은 기재부에서 3~4월경 결정되는 내년도 실링(ceiling·정부 부처별 예산 한도액)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 시장에게는 이날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답변을 부탁했다. 전장연에서 제시한 검토 기간은 오는 3월 23일까지다.

오 시장은 이날 전장연과 만난 뒤 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 등 다른 장애인단체와 개별 간담회를 가졌다. 전장연은 3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13일까지 지하철 탑승 시위를 중단한다며 장애인 기본권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해달라고 시민들에게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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