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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지내는 발달장애인 부모들 “예비 살인자 되고 싶지 않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6-02   조회수 :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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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자녀 살해 후 스스로 목숨 끊는 참사 잇따라
장애인 부모들, 7월 10일까지 49재 지낸다
윤석열 정부 향해 “24시간 국가책임제 구축하라”
강민정 의원 “입법 나설 것”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는 부모연대 활동가. 그의 뒤로 대통령실 청사가 있는 국방부 건물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는 부모연대 활동가. 그의 뒤로 대통령실 청사가 있는 국방부 건물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지난 23일, 발달·중증장애인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에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이 전국 각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49재를 지내기로 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는 31일 오전 11시, 서울시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9재가 도래하는 7월 10일까지 고인을 추모하며 ‘집중 투쟁 기간’을 갖겠다고 선포했다.

또한 고인이 사망한 후 7일마다 재를 올리는 제사의례에 따라, 49재 기간 중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에 ‘집중 투쟁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발달장애인 24시간 국가책임제’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각지역 1·2번 출구 개찰구 근처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의 모습. 사진 하민지
삼각지역 1·2번 출구 개찰구 근처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의 모습. 사진 하민지

- 전국으로 퍼지는 추모 물결… 장애계, 분향소 19개 설치

지난 23일, 서울시 성동구에 사는 40대 여성이 6살 발달장애자녀를 안고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경비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모자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두 사람 모두 끝내 숨졌다. 같은 날, 인천시 연수구에서는 60대 어머니가 대장암을 진단받은 30대 중증장애자녀(발달·뇌병변 중복장애)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미수에 그쳤다.

이에 부모연대는 26일 오전 11시,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추모제를 열고 4호선 삼각지역 1·2번 출구 개찰구 근처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도 서울시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 분향소를 설치해, 서울 시내에서는 총 2개 분향소가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정치권의 조문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권수정 서울시장 후보·조성주 마포구청장 후보,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송영길 서울시장 후보·김철식 용산구청장 후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 등이 근조기를 보내거나 분향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분향소는 전국 각지에 세워지고 있다. 장애계는 경기도, 인천시,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충청북도 등 전국 19곳에 분향소를 설치해, 고인을 추모하며 정부를 향해 ‘발달·중증장애인 24시간 국가책임제’를 요구하고 있다.

기자회견 현장. 부모연대 활동가들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들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 현장. 부모연대 활동가들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들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타살”… 강민정 의원 “24시간 지원체계 보장 위해 입법하겠다”

발달장애인과 가족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발달장애인 24시간 국가책임제’를 국정과제에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지난달 19일에는 서울시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557명이 동시에 삭발 투쟁을 진행하고, 대표단은 경복궁역에서 보름간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 3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발달장애인 24시간 국가책임제’가 빠진 것이다. 윤 정부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모델은 평가를 거쳐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 얼마큼 확대하는지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았다.

그 외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은 장애아동의 재활에 집중돼 있다. 발달장애를 조기에 발견해 재활치료를 확대하겠다는 것인데, 장애를 의료적 관점에서만 보는 협소한 시각이다. 이 외에 지원체계나 차별해소를 위한 정책은 명시되지 않았다. 부모연대는 투쟁결의문에서 “이 정책들은 문재인 정부 정책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도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발달장애자녀를 키우는 김수정 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은 “거주시설에 갇히거나 부모에게 살해당하는 게 장애인의 현실이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지원체계가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정부는 지원체계를 만들지 않고 가족에게 떠넘긴다. 윤석열 정부의 국민에는 발달·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은 없는 것인가? 끔찍한 죽음 앞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답변을 내놔라”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또한 “24시간 지원체계가 촘촘하게 마련돼 있었다면 그런 비극적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도저히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부모의 마음을 짐작하면 절망적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윤석열 정부는 장애인과 가족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라”고 강조했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는 부모연대 활동가들. 사진 하민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는 부모연대 활동가들. 사진 하민지

발달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의 절규도 이어졌다.

“이 죽음들은 국가가 방치해 일어난 사회적 타살입니다. 이 나라의 돌봄 사각지대가 일으킨 죽음입니다. 자녀를 살해한 사람들은 참으로 나쁜 엄마들입니다. 결코 용서받아서는 안 됩니다. 더불어 국가에도 요구합니다. 제발 엄마들이 금쪽같은 내 아이를 내 손으로 죽이는 일이 없도록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하십시오. 우리 엄마들이 더는 범죄자가 되지 않도록, 또 다른 장애인과 가족이 죽기 전에 국가가 나서십시오.” (허혜영 부모연대 경기부지부장)

“장애인과 가족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행복추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죽음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벌벌 떨립니다. 우리는 예비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24시간 지원체계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선택을 했겠습니까? 사는 동안, 우리 아이들과 행복한 동반자로 살고 싶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드시 24시간 지원체계를 구축하십시오.” (조영실 부모연대 인천지부장)

부모연대는 윤석열 정부에 △종합조사 개편으로 발달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확대 △산정특례 종료 후에도 기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유지 △주거지원서비스 도입으로 주거권 보장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확대로 노동권 보장 △장애인연금법 개정으로 생존 위한 소득 보장 △제2차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 수립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장애아동복지지원법 개정 등을 요구했다.

‘투쟁’을 외치는 강민정 의원. 사진 하민지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석해 발달장애인 24시간 국가책임제를 법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입법하겠다고 밝혔다.

강민정 의원은 “잇따른 참사 소식을 들으며 정치인으로서 너무 죄송하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공인받았다지만 정부의 정책 변화는 너무나 더디다. 후진국이나 다름이 없다”며 “현재 장애계에서 열심히 투쟁해 주셔서 장애인권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이 기회 놓치지 않고 24시간 지원체계가 법적으로 보장되도록 입법 작업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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